[뷔민] 투닥투닥
태형과 지민은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웠다. 주먹으로 치고받는 험한 몸싸움까진 아니고 사소한 일로 시작된 말싸움 정도였지만 그 언쟁이 너무 잦은 게 문제였다. 니네 고만 좀 싸워! 하는 형들의 만류에 둘 다 입을 꾹 다물긴 했으나 대신 눈빛으로 기 싸움을 했다. 그러다 태형이 눈을 희번덕거리며 턱을 들면 지민이 지지 않고 똑같이 했다. 그러다 태형이 확 손을 치켜들면 지민은 태형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당장에라도 주먹이 오고 갈 것 같은 일촉즉발의 상황이지만 멤버들은 고개만 절레절레 저을 뿐이었다. 위협뿐이지 심하게 치고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가끔 몸싸움으로 번져도 장난같이 몇 대 살짝 치는 정도였다. 싸움의 이유는 정말 간단한 것에서 시작되곤 했다. 그냥 말장난하다 불꽃이 튀는 경우도 있고 대부분은 음식 때문이었다. 1순위는 과자였다. 그냥 같이 사이좋게 나눠 먹으면 될 것을 어린 애들 마냥 니꺼 내꺼 하며 투닥거렸고 어쩌다 같이 먹게 되더라도 서로 왜 더 많이 집어 가냐며 싸웠다. 지긋지긋한 싸움을 지속하던 두 사람이 썸을 타게 된 건 정말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니 태도가 무시하는 거 밖에 안 되잖아!"
"말이 안 되는 소리를 하니까 그렇지!"
"그게 왜 말이 안 돼?"
정국은 정말로 집에 가고 싶었다. 사실 알려고 안건 아닌데 본의 아니게 멤버들 중 저 둘이 썸타는 관계라는 것을 알고 있는 유일한 자가 본인이었다. 근데 저 둘은 들킨 걸 신경 쓰는 건지 아닌지도 모르겠고 일단 저 지긋지긋한 다툼 좀 제발 그만했으면 좋겠다. 평소에도 자잘한 일 가지고 자주 투닥대는 둘이지만 최근 들어 싸움이 잦아진 데는 이유가 있었다. 누가 봐도 썸이었던 둘이지만 정작 지민이 사귀자는 고백을 뻥뻥 걷어차고 있는 게 그 이유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사귀기 전인데도 꿀 떨어지는 눈으로 여기저기 만지고 웃고 바라보는데 제3자인 정국의 간담이 서늘할 정도였으니. 저러다 들키지 저거. 못해도 김태형이 박지민 좋아한다는 것은 사실상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었다.
“너는 뽀뽀하면 다 사귀냐?
“그럼 뽀뽀했는데 안 사귀냐?”
얼씨구. 이번엔 뽀뽀까지 했나보다. 정국은 듣고 싶지 않은 그들의 연애사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모르고 싶어도 내용이 대충 그려졌다. 둘이 뽀뽀를 하고 난 후에 태형이 사귀자고 했고 지민이 또 퇴짜를 놓은 모양이었다. 뽀뽀 얘기로 저렇게 살벌하게 하는 싸움은 드라마에서도 본 적 없는데... 정국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누가 대놓고 사귄대? 몰래 사귀면 되잖아!"
"지금도 간당간당한데 니가 퍽이나 몰래 그러겠다. 아무튼 난 싫어."
"싫은게 문제가 아니지. 넌 적극성이 없어. 날 좋아하긴 해?"
"그래. 니 말이 맞는지도 모르지. 난 널 사귀고 싶을 정도로 좋아하는 건 아닌가봐"
"뭐? 다시 말해봐 뭐라고?"
살벌한 표정의 태형이 지민의 어깨를 꽉 잡았다. 지민도 지지 않고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태형을 응시했다. 한참 눈싸움을 하다가 먼저 시선을 돌린 건 지민이었다.
"그만하자 지금 연습해야 되는데 이런 거로 시간낭비..."
"이런 거? 이런 거??? 이게 진짜!! 다 알면서 놀려먹으면 재밌냐?"
"알긴 뭘 알아 내가!"
내가 너 좋아하는..!!! 까지 외치고 태형의 입이 지민에 손에 의해 막혔다. 지금 둘이 마주 서 있는 곳은 옥상이었다. 아주 광고를 해라. 지민이 태형의 입을 툭 쳤다.
"됐어 연습 늦겠어. 나중에 얘기해."
태형을 등진 지민이 털레털레 계단을 내려갔다. 그 밑에 있던 정국은 숨으려고 했지만, 타이밍을 놓쳤다. 원래 온 목적은 연습실에 같이 가자고 부르려던 거였는데 괜히 와서 이게 뭐람. 정국을 본 지민이 활짝 웃으며 어깨에 팔을 둘렀다. 고개가 지민 키에 맞춰 수그러들었다.
"정국이 왔어?"
굳어졌던 얼굴은 어디 가고 해맑게 웃는 지민을 보는 태형의 표정이 곱지 못하다. 그러든 말든 지민은 정국이의 어깨에 매달린 코알라 같은 모습으로 웃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정국은 조용히 지민의 팔을 빼내고 빠져나갈 궁리를 하는데 태형과 지민의 입이 동시에 열렸다.
"형이랑 밥 먹으러 가자!"
"정국아 햄버거 먹으러 가자!"
서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맞닿은 두 사람의 시선에서 불꽃이 튀고 있었다.
"그럼 점심으로 햄버거 먹을까요?"
정국은 딱히 햄버거를 먹고 싶지 않았지만, 더 피곤해지기 전에 재빨리 타협방안을 제안했다. 지민이 표정을 찌푸리며 말했다.
"햄버거를 왜 먹어."
"누가 너랑 먹자고 했냐?"
"좋게 말할 때 포기해라 내가 1초 먼저 말했으니까"
"뭐래, 나랑 저번 주부터 햄버거 먹자고 했었지 정국아?"
"정국아 밥을 먹어야 더 힘이 나고 몸에 좋아. 햄버거 같은거 먹지 마."
"니가 뭔데 먹으라 마라야! 저리 꺼져"
"그러는 넌 뭔데 나한테 꺼지라 마라야!"
"정국이는 나랑 햄버거 먹을 거라고!"
"아니야 나랑 밥 먹을 거야!!"
어느새 정국이 뒷전이고 둘이서 헤드락 까지 걸고 싸운다. 어휴 저게 스물셋이라니... 정국은 한숨을 쉬며 조용히 옥상을 빠져나갔다. 결국 밥은커녕 쓸데없이 싸움으로 체력만 소모한 지민과 태형은 주린 배를 움켜쥐고 연습해야했다. 아침부터 먹은 게 없어서 한참을 연습하다 보니 기력이 모자랐다. 지민은 평소 잘하던 구간에서 발을 삐끗했고 음악 소리에도 태형의 꼬르륵 소리는 옆 사람에게 들릴 정도로 크게 났다. 보다 못한 석진이 음악을 껐다. 잠시 휴식.
"니네 밥 안 먹고 대체 뭐했어? 지금 한 이십분 정도 쉴 거니까 둘이 뭐라도 빨리 먹고 와"
결국, 쫓기듯 연습실 밖으로 나온 두 사람은 말없이 앞만 보고 걸었다. 시간이 많지 않아서 대충 편의점에서 때울 생각이었다. 지민이 편의점 앞에서 걸음을 늦추며 태형에게 말을 걸려는데 휘적휘적 빠른 걸음으로 태형이 지민을 지나쳐 간다. 자주 싸우긴 해도 골이 깊지 않았고 오래 가는 편도 아니었다. 손을 내밀면 항상 잡아줬다. 그런데 오늘은 저렇게 눈도 안 마주치고 쌩하니 가버리다니. 지민은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일단 편의점으로 들어가 도시락이 비치된 곳에 섰다. 어떤 도시락을 먹을지 고르는데 자꾸만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앞질러 가던 뒷모습이 떠오른다.
지민은 연애 경험이 거의 없다. 대부분이 짝사랑이었고 딱 한 번 했던 연애는 3주도 못 가 깨졌다. 그 짧은 연애를 하며 생각했다. 정말 미치도록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면 절대로 사귀지 말아야겠다고. 섣부른 설렘에 덜컥 넘어가 연인이 되고 나면 금세 식어버릴 것만 같았다. 한 번이지만 실제로 겪은 것기도 했다. 제 마음이 좀 아닌 것 같아요... 일주일을 끙끙 앓다 내뱉은 말이었다. 두루뭉술했지만 상대는 지민의 마음을 단박에 알아챘다. 그렇게 처음이자 마지막 연애가 끝났다. 그 기억은 잠을 자기 전 불쑥 나타나 종종 지민을 괴롭혔다. 남에게 상처 주는 것이 너무 싫었다. 그래 니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하는 답을 듣고 너무나도 미안했었다. 잡아주면 잡혔을 텐데 상대는 바로 지민을 보내주었다. 그래도 좋은 사람이었는데 너무 빠르게 상처만 주고 끝낸 것 같아서 너무 미안했다. 그래서 그때부터 생각했다. 진짜 애틋하고 애달프고 미칠 것 같이 차오르는 감정이 아니라면 절대로 연애를 시작하지 말아야겠다고. 실제로는 느껴 본 적이 없는 감정이지만 아무튼 그러기로 했다. 설익은 사랑 말고 제대로 익었을 때 시작하기로.
그런데 하필 찾아온 두 번째 사랑이 태형일 줄이야. 처음엔 분명 친구로 편하게 생각했었는데 어느샌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고 언제부턴가 좋아하게 되었다. 이 과정은 태형도 마찬가지였다. 둘 다 같은 마음이라는 것을 알고 묘한 썸을 타는 관계로까지 발전했지만 지민은 결정적인 순간에 그런 태형의 마음을 모르는 척 행동했다. 지민아 우리 이제 사귈까? 하면 그게 무슨 소리냐고 정색을 했고 스킨십도 최대한 자제했다. 한다고 했는데 뽀뽀까지 해버렸지만. 같은 멤버이자 절친한 친구인 태형과 연인으로 발전한다는 것은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 혹시 사귀다가 헤어지기라도 한다면.....생각만해도 끔찍하다. 친구를 잃는 것도 싫었고 다른 멤버들에게 지장을 주게 되는 것도 싫다.
“나는 돈까스 도시락.”
한참 생각에 빠져 넋을 놓고 있는 지민의 옆에 불쑥 나타난 태형이 말했다. 길쭉한 손가락이 돈까스 도시락을 가리키는 것을 본 지민이 태형을 돌아다봤다.
“..시...시룬데? 니 돈으로 사먹어..”
“와 너 진짜 완전 치사하다.”
툴툴대는 태형을 무시한 지민이 제 몫의 도시락을 집어 들자 다가온 태형의 손이 휙 채갔다. 남은 손으로 돈까스 도시락을 집어 들더니 카운터로 걸어가 두 개 다 계산을 한다. 지민이 벙 찐 표정으로 바라만 보고 있자 힐끗 돌아본 태형이 먼저 편의점을 나섰다. 지민이 후다닥 그 뒤를 따랐다.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 한참을 뒤통수만 보고 걷는데 별안간 태형의 몸이 휙 돌아선다.
“야 받아라”
“....?”
태형이 무언가를 지민 쪽으로 휙 던졌다. 엉겁결에 받아든 것의 정체는 뿌리는 파스였다. 지민이 물음표를 달고 바라보자 태형이 괜히 눈을 피해 하늘을 바라본다.
“너 뭐...아까 발목 삔 것 같길래.”
헐. 지민은 저 모습이 귀엽게 보이는 자신이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뒷목이 따끔해서 긁적였다. 손끝부터 찌릿하고 올라오는 느낌이 이상하다.
“넌 삐돌이야. 잘 삐지고 발목도 잘 삐고...”
“뭐? 삐돌이?”
귀엽다고 한 거 취소. 지민은 파스로 태형의 등을 아프지 않게 내리쳤다. 내가 삐돌이면 너는 삐삐돌이라는 유치한 말과 함께. 한참을 투닥거리며 휴게실에 도착한 둘은 말없이 도시락을 먹기 시작했다. 역시 먹을 때가 제일 조용한 법이다. 침묵이 이어지자 잠깐 녹았던 기류가 다시 얼어버렸다. 열심히 볼을 우물대던 지민이 도시락에 있던 고기를 집어 들어 태형의 밥 위에 툭 떨어뜨렸다.
“...뭐야?”
“나 배불러서”
퉁명한 지민의 대답에 태형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씩 웃었다. 그럼 내가 먹어주지 뭐. 대단한 선심이라도 쓴다는 듯한 말투에 지민이 먼저 피식 웃음의 포문을 열었다. 질세라 태형도 실소를 터뜨렸다. 도시락만 내려다보며 한참을 피식대던 둘은 결국 마주 보고 히죽대며 웃기 시작했다. 그러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야 아까 진형 춤추는 거 봤어? 나 진짜 그런 퍼덕거림 처음 봤어”
“아까 우리 혼낼 때도 춤 생각밖에 안 나서 웃음 참느라 진짜...”
석진의 춤 이야기를 하며 키득대기 시작했다. 싸우느라 밥도 먹지 못하고 연습하던 두 사람이 걱정되어 휴게실까지 온 석진은 미소를 지었다. 화해한 동생들의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그래서 한쪽씩 머리 위에 손을 올려놓고 그대로 박치기를 시켰다. 꽝! 하고 머리 위에 별이 돌아가는데도 태형과 지민은 더 크게 웃었다.
**
그날 이후 태형과 지민은 친구 사이로 돌아갔다. 말이 친구지 지민은 여전한 마음을 끌어안고 속앓이 중이었다. 태형이 불도저마냥 하트를 날리고 시도 때도 없이 손을 잡으며 애정표현을 할 때는 들킬세라 노심초사하기만 했었는데 막상 뚝 모든 것이 끊기고 나니까 마음이 달기 시작했다. 줄 땐 거절해놓고 사라지니까 안절부절못하는 꼴이라니. 지민은 제 모습이 한심했다. 스킨십은 둘째 치고 마음이라도 확인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았다. 젠가 게임도 아니고 태형은 불도저 모습을 블록 빼듯 쏙 빼서 어디 깊은 바닷속에 던지고 온 사람처럼 굴었다. 이렇게 쉽게 친구로 돌아갈 만큼 감정의 골이 약하지 않았던 것은 분명한데 태형은 평소처럼 반짝이고 잘생겼다.
“얘기 좀 해.”
한 달여의 시간이 지났다. 밤마다 종종 나타나 지민을 괴롭히던 첫 연애는 한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대신 불쑥 나타나 밤새 괴롭히는 것은 태형의 모습이었다. 지민아 우리 이거 하자 저거 하자 하면서 말을 걸기도 하고 깍지 낀 손을 꽉 잡고 와락 끌어안기도 했다. 환영 김태형에게 시달고 나서 찾아온 아침에는 실제 김태형이 있다. 여전히 지민아 하며 여전히 지민을 먼저 찾았다. 친구일 때도 썸을 타던 때도 태형은 지민을 신경 쓰고 지민이 늘 첫 번째 였다. 그냥 이대로 어물쩍 넘어가 친구로 지내도 여전히 서로가 소중할 텐데 그런데 왜 자꾸만 마음이 답답한지 알 수 없었다. 혼자 감당하기 힘들어진 지민은 결국 태형을 옥상으로 불러냈다.
“우리 사이 말이야..”
“..우리 사이?”
“넌 아무렇지도 않아?”
뭐가? 태형이 어깨를 으쓱하며 물었다. 그 태연한 언동에 지민이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눈동자를 이리저리 보내며 달싹이는 입술을 한참 보던 태형은 하늘로 시선을 옮겼다. 계속 보고 있다간 새빨개진 마음이 펑 하고 터질 것 같았다.
“그러니까 우리...그냥 이렇게 그냥 친구로 지내는 거.”
“응 우리 친구잖아”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까 지민은 여기저기 고치고 고쳐 꺼낸 말이 생각보다 초라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뒤를 이어 빠르게 나온 태형의 답변이 간단해서 더욱 고개를 숙였다. 정말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는데 정확히 그게 뭔지 스스로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바람 소리만 남은 곳에서 다시 입을 연 것은 태형이었다.
“나는 언제까지나 니 친구야.”
“........”
“나는 너랑 친구도하고 애인도하고 형님도 하고 싶어”
형님이라는 말이 거슬렸지만 지민은 제 가슴을 손으로 꾹 눌렀다. 손바닥에 쿵쿵 퍼져가는 박동이 느껴졌다. 언제 여기까지 온 걸까.
“그러니까 내 말은 우리가 사귀는 사이로 발전해도 친구이자 애인일거란 말이지.”
지민은 다시 고개를 들어 태형을 봤다. 모자라고 바보인 것 같다가도 이럴 때 보면 마음을 훤히 꿰뚫린 것 같아서 흠칫하게 된다. 애인 사이가 깨져도 여전히 친구로 남아 있겠다는 뜻이었다. 아직 다가오지 않은 일이라 실제로 그게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지민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친구인 태형을 잃는 것이기에 조금의 위안은 됐다.
“니가 내 고백 차버리고 친구로 있기를 원했기 때문에 나는 지금 니 친구로 있는 것뿐이야.”
알고 있구나. 지민은 속으로 탄식했다. 두려워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걸 알고 나서 더는 밀어붙이지 않는 것이다. 이쯤에서 지민은 두려워서 꽉 닫아 놓고 자신에게도 보여주지 않으려 했던 깊숙한 곳을 반쯤 열고 빼꼼 들여다보았다. 사실 보지 않아도 안다. 언제 여기까지 들어왔어? 그 안에 있는 것은 김태형이다. 겁이 나고 두려웠던 것은 잃기 싫어서. 너무 소중해서 잃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오래 갈 것 같았던 첫 연애는 쉽게 끝났지만 두 번째 연애는 알 수 없다. 그래서 더 두려웠다. 태형이 지민에게 한 발짝 다가섰다.
“이제 나는 절대로 너한테 고백 안 해.”
“...왜?”
“나랑 사귀고 싶으면 니가 먼저 나한테 고백해야해.”
그 말을 남기고 뒤돌아선 태형이 멀어져간다. 그냥 이렇게 있어도 여전히 서로가 소중한 친구로 지낼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깊숙한 곳에서 태형이 묻는다. 놓치고 싶지 않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린다. 반쯤 열린 문이 점점 더 벌어지고 있었다. 나도 그래.
**
대기실에서 나온 태형은 옆쪽의 빈 분장실 문을 벌컥 열었다. 메이크업 순서를 기다리며 조용한 곳에서 잘 생각으로 왔는데 아무도 없을 줄 알았던 곳에 지민이 있었다. 바싹 마른 입술을 혀로 대충 축이며 안으로 들어섰다.
“여기서 뭐하냐?”
“그러는 넌 왜 왔는데?”
“내가 먼저 물어 봤거든”
“이게 형님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냐?”
“그러는 넌 오빠한테 그게 무슨 말 버릇이니”
태형의 오빠 발언에 지민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오빠는 무슨! 코웃음을 치며 옆에 있던 휴지를 집어 던졌다. 어깨를 맞고도 좋다고 웃는 태형을 보며 함께 웃다가 다시 핸드폰으로 시선을 옮겼다. 건조한 공기 탓에 자꾸만 입술이 말라서 립밤을 꺼내 바르자 언제부터 보고 있었던 건지 태형이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어? 나도나도. 나도 립밤”
안 그래도 아까부터 하도 침을 발라서 오히려 더 거칠어졌던 참이었다. 태형이 손을 내밀자 지민이 고개를 갸웃한다.
“..어, 방금 쓴 게 마지막이었는데?”
장난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려 빈 틴케이스를 보여주자 태형이 울상을 지었다. 마른 입술이 더 버석거리는 것 같이 느껴진다. 다른 멤버에게 빌리려고 자리에서 일어서자 지민이 물었다.
“너 립밤 니꺼 없어?”
“응”
“그럼 이렇게 해.”
재빠르게 훅 다가선 지민이 태형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말캉하게 닿은 입술이 떨어지며 쪽 소리가 났다. 눈이 휘둥그레진 태형의 입이 점점 벌어진다. 멍하게 바라보는데 지민이 어깨를 으쓱하며 웃는다.
“야 이제 큰일 났다”
“....어?”
“뽀뽀하면 사귀는 거라며?”
호기로운 지민의 말에 태형이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네모 모양으로 웃는 입을 보며 지민이 태형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상처를 받을 수도 줄 수도 있다.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두렵다. 하지만 멈출 수가 없다. 두려움이 작게 느껴질 정도로 좋아하는 마음이 커져 버렸으니까. 고작 두려움 때문에 놓치고 싶지 않아졌다. 사랑은 사람을 변하게 하고 치유해. 그러니까 두려움보단 행복을 찾자 우리.